오펜하이머 이름이 역사상 처음 언론에 소개됐던 '제자 여친' 실종 신고 사건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이름이 언론에 소개됐던 제자와의 관계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이름이 언론에 소개됐던 제자와의 관계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펜하이머가 8월 15일 국내 개봉 후 연일 인기를 끌며 19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수성하고 있습니다. 관객수 260만 명을 돌파한 가운데, 영화 관객들은 실존 인물 물리학자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요. 영화 오펜하이머의 원작 도서 아메리칸 프로메테우스 역시 베스트 셀러에 올랐습니다. 이 가운데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사실 오펜하이머 인생에서 매우 중요했던 한 사건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바로 그의 이름이 처음 언론에 소개됐던 제자 여자친구의 실종 신고 사건입니다.

영화 오펜하이머 연기한 배우 킬리언 머피
영화 오펜하이머 연기한 배우 킬리언 머피

 

영화 오펜하이머 주된 내용은 '핵폭탄' 트라우마와 정치적 공세에 맞선 청문회

영화 오펜하이머는 물리학도에서 교수, 그리고 세계적인 물리학자들을 이끌고 맨해튼 프로젝트와 트리니티 실험에 성공하는 과학자 오펜하이머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영화는 오펜하이머가 물리학자로서 교수직에 오르는 과정을 비교적 짧게 보여줍니다.

대부분 영화 러닝타임은 과학자들의 리더가 된 오펜하이머의 핵폭탄 개발 과정과 이후 일본 히로시마 나가사키 핵 투하 후 그가 겪는 인류 멸망에 대한 트라우마, 그리고 이후 루이스 스트로스의 계략으로 소련의 공산주의자라는 누명을 쓴 청문회 장면으로 가득차 있는데요. 

영화 오펜하이머 맨해튼 프로젝트
영화 오펜하이머 맨해튼 프로젝트

크리스토퍼 놀란은 인간 오펜하이머를 집중 조명하면서도 그가 '핵폭탄의 아버지'가 된 후 겪는 감정 변화, 이후 정치적으로 내몰리며 일어나는 사람들과의 갈등, 당시 미국의 정치 상황 등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 것으로 보입니다.

때문에 실제 오펜하이머의 학창 시절이나 사생활과 관련된 장면은 거의 없는데요. 그가 지도교수 패트릭 블래킷의 사과에 독을 넣는 장면과 진 태트록과의 이성 관계, 이후 결혼을 하게되는 캐서린 키티 오펜하이머와의 관계가 나옵니다. 그러나 두 여성과의 관계는 향후 오펜하이머가 공산주의자로 정치적 공세를 받는 내용과 이어지기 때문에 단순 그의 '사생활' 혹은 '여자 관계'만 보여주는 장면은 아닙니다.

영화 오펜하이머 결말
영화 오펜하이머 결말

 

어린시절부터 '천재'였던 오펜하이머..하버드 대학교 수석 졸업에서 괴팅겐대 박사까지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는 어린시절부터 두각을 드러낸 명석한 '천재과' 소년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의류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번 부모님 밑에서 부유하게 자랐는데요. 부모님이 돈이 많았던 이유에서인지 아들을 향한 교육열이 상당히 강했고, 그의 천재적 두뇌가 결합해 빠르게 천재 과학자로 성장해 나갔습니다. 1922년 하버드 대학교 화학과에 입학한 그는 당시 물리학에 빠져 대학원생 과목을 듣게 되고, 이듬해 양자역학의 아버지라 물리는 과학자 닐스 보어가 하버드 대학교에서 한 강연을 들으며 더욱 물리학에 빠져들게 됩니다.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줄리어스 로버트 오펜하이머

1925년 하버드 대학교 수석 졸업이라는 천재적인 머리를 입증한 오펜하이머는 영국 케임브릿지 대학교를 거쳐 독일 괴팅겐 대학교로 넘어갔는데요. 당시 괴팅겐 대학교는 '물리학의 성지'라고 불릴 정도로 아주 저명한 학교였습니다.

그곳에서 오펜하이머는 이른바 물리학에 대한 '잠재력'을 폭발시키며 1927년 9개월 만에 박사 학위를 취득하며 물리학계 내에서 오펜하이머는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영화 오펜하이머 킬리언 머피와 실존 인물
영화 오펜하이머 킬리언 머피와 실존 인물

 

오펜하이머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언론에 나왔던 사건..과학 아닌 여자가 이유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오펜하이머의 이름은 당시 신문에서 한번도 등장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언론에 처음으로 오펜하이머라는 인물이 등장했습니다. 그가 UC 버클리 대학 교수로 재직하던 1934년 한 제자 여학생과 교제하던 중 벌어진 일 때문입니다. 이 사건은 영화 오펜하이머에 단 한장면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1934년 2월 신문에 매우 크게 오펜하이머 실종 신고 해프닝과 관련된 기사가 신문에 실렸습니다. UC 버클리 물리학 교수였던 오펜하이머는 대학원생이었던 멜바 필립스라는 학생과 교제 중이었다고 하는데요. 이때 두 사람은 오펜하이머의 자동차를 타고 버클리 힐스라는 곳을 데이트하고 있었습니다. 

오펜하이머 제자였던 여성 멜바 필립스
오펜하이머 제자였던 여성 멜바 필립스

잠시 차를 세운 오펜하이머는 편안히 누워있는 멜바 필립스에게 잠시 산책을 다녀온다고 말하고 차 밖으로 나갔는데, 이때 멜바 필립스는 오펜하이머를 기다리다 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몇 시간 후 잠에서 깬 멜바 필립스는 아직도 오펜하이머가 돌아오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화들짝 놀랐다고 하는데요.

그에게 큰일이 생긴 줄 알고 곧바로 경찰에 실종 신고를 했습니다. 경찰이 오펜하이머의 집을 확인하자 그는 자신의 방에서 편안하게 자고 있었는데요. 사실 오펜하이머는 산책을 마치고 차로 돌아와 창문 밖에서 멜바 필립스에게 "집에 걸어가겠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때 멜바는 잠이 든 상태였기 때문에 오펜하이머가 집에 간다는 이야기한 것을 듣지 못했고 실종 신고를 해버렸던 것인데요.

오펜하이머 차에서 신문사 사진 촬영한 멜바 필립스
오펜하이머 차에서 신문사 사진 촬영한 멜바 필립스

 

오펜하이머 제자 여자친구의 실종 신고 해프닝..당시 신문 헤드라인 크게 보도해

해당 사건은 크게 화제를 모았고 신문사에서 이 해프닝을 다루며 최초로 오펜하이머 이름이 언론에 등장한 사건으로 기록됐습니다. 당시 한 신문에서는 "건망증이 심한 교수가 여학생을 내버려두고 갔고, 학생이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고 있을 때 집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라고 보도했습니다.

오펜하이머 이름 최초로 보도됐던 당시 신문들
오펜하이머 이름 최초로 보도됐던 당시 신문들

이후에도 두 사람은 관계를 이어왔는데요. 오펜하이머는 1935년 멜바 필립스와 함께 '중양성자 변환기능의 특징'이라는 논문을 발표했고, 이는 핵물리학과 관련된 연구로 알려졌습니다.

멜바 필립스는 1907년 태어나 2004년 사망한 미국의 물리학자입니다. 과학 교육의 개척자로 불리는 인물이며, UC 버클리 교수였던 오펜하이머의 대학원생 제자로 1933년 박사 학위를 취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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