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실제 인물' 정우성 정해인 역할 모티브 장태완, 김오랑과 노무현 대통령의 남다른 인연 (백영옥)

서울의 봄 영화 이태신 장군 오진호 소령 실제 인물 장태완 김오랑과 노무현 대통령 인연
서울의 봄 영화 이태신 장군 오진호 소령 실제 인물 장태완 김오랑과 노무현 대통령 인연

김성수 감독 연출, 황정민 정우성 주연의 영화 서울의 봄이 개봉 후 놀라운 흥행으로 200만 관객수를 넘은 가운데, 서울의 봄 영화 속 극 중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 장군의 실제 인물인 장태완과 정해인 역할이었던 오진호 소령 실물인 김오랑 소령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습니다. 장태완과 김오령은 현실에서도 전두환 노태우 하나회 일당에 맞섰던 참군인으로 평가되고 있는데요. 이런 두 인물이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이 영화를 본 많은 관객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 속 전두환 역할 전두광 배우 황정민
영화 서울의 봄 속 전두환 역할 전두광 배우 황정민

 

2023년 하반기 한국 영화 최고작 서울의 봄 흥행 성공하며 극찬의 평가 평점 후기 쏟아지는 중

지난 11월 22일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은 11월 29일 기준 누적 관객수 213만 명을 돌파하며 올 하반기 개봉한 한국 영화 중 가장 강력한 티켓 파워를 자랑하며 개봉 후 줄곧 박스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황정민, 정우성, 박해준, 이성민, 김의성, 정해인, 김성균, 정만식, 이준혁 등 충무로 명품 배우들이 총출동해 실제 역사적 인물을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했는데, 이들의 연기력에 더해 김성수 감독의 연출과 탄탄한 시나리오로 '걸작'이 탄생했다는 극찬의 평가와 평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 흥행 평가 평점 대성공
영화 서울의 봄 흥행 평가 평점 대성공

 

영화 서울의 봄 등장 배역과 실제 인물들도 영화 개봉 후 큰 관심

이번 영화는 전두환, 노태우 등이 포함된 군내 사조직 하나회가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전 대통령 사망 이후 군 권력을 찬탈한 12.12 군사 쿠데타를 집중 조명하는 영화입니다. 이 과정에서 전두환 일당에 맞서 끝까지 대항한 진압군들의 모습도 고스란히 묘사되는데요. 영화 속 전두환을 연기한 배우는 황정민으로 극 중에서는 '전두광'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며, 12.12 군사 반란 당시 반란군에 맞섰던 대표적인 군인이었던 장태완 소장은 배우 정우성이 연기해 이태신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합니다.

또 배우 이성민이 연기한 정상호 육군참모총장의 실제 인물은 정승화 대장이며, 배우 김성균이 연기한 김준엽 헌병감의 모티브는 김진기 준장에서 따온 것입니다. 특별출연한 배우 정만식과 정해인은 각각 육군특수전사령관 공수혁과 그의 비서실장 오진호 소령을 연기했는데요. 이들의 실제 인물은 정병주 소장과 김오랑 소령입니다.

서울의 봄 정우성 연기한 이태신 장군 실물 장태완 장군
서울의 봄 정우성 연기한 이태신 장군 실물 장태완 장군

 

서울의 봄 정우성 이태신 실제 인물 장태완 소장, 정해인 연기한 오진호 모티브 김오랑 소령 관심

이 중에서도 배우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 장군의 실제 인물 장태완 소장과 정해인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의 실제 인물 김오랑 소령에 대한 관심이 영화를 본 관객들 사이에서 더욱 커지고 있는데요. 영화 속에서 두 사람이 군사 반란 반역자들에 맞서 가장 처절하게 싸운 인물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도 김오랑은 반란군 총에 맞아 숨지고 장태완 소장은 전두환 일당이 실권을 잡은 후 온갖 수모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영화 서울의 봄 정해인 역할 실제 인물 김오랑 소령
영화 서울의 봄 정해인 역할 실제 인물 김오랑 소령

 

서울의 봄 이태신 장군 모티브 '참군인' 수도경비사령관 장태완 장군..안타까운 가족 비극까지

이태신 장군 실제 모티브가 된 인물인 장태완 소장은 제 7대 수도경비사령관으로, 정승화 계엄사령관이자 육군참모총장이 전두환 하나회 일당이 세력을 키우기 시작하자 직접 수경사령관으로 선택한 인물입니다.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참군인으로 평가받으며, 하나회의 12.12 군사 쿠데타에 끝까지 대항했던 인물이기도 합니다.

하나회의 군사 반란이 성공하고 이들이 군권을 장악하자 장태완 소장은 곧바로 수도경비사령관직에서 해임됐는데요. 이후 장 장군의 가족들도 비극을 겪었습니다. 장태완 장군 아버지는 아들 소식을 듣고 크게 분개하고 통탄해 막걸리로 끼니를 대신하다가 이듬해인 1980년 4월 세상을 떠났습니다. 또 전두환이 대통령직에 오른 후인 1982년에는 서울대학교 자연과학대학에 수석을 할 정도로 머리가 좋았던 장태완 소장 아들 장성호 씨가 할아버지 묘 인근에서 의문사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정확한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으나, 많은 국민들은 장태완에게 억하심정이 있었던 전두환 정권이 벌인 일이라 추측하고 있습니다.

장태완
장태완

 

장태완 소장 12.12 군사 쿠데타 및 전두환 정권 이후 인생

장태완 소장은 민주화 이후 1994년 대한민국재향군인회장 경선에서 승리해 2회 연속 회장으로 역임했고, 1996년 김영삼 대통령 문민정부 시절 열린 12.12 군사 반란 및 5.17 내란 책임이 있는 전두환, 노태우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서기도 했습니다. 

2000년 이후에는 새천면민주당 김대중의 인재 영입 인사가 되어 비례대표로 제16대 국회의원을 지냈습니다. 

장태완 장군 아들 가족
장태완 장군 아들 가족

 

서울의 봄 정해인 연기한 오진호 소령 실제 인물 김오랑 소령 반란군 의해 순국..남은 가족들도 비극 겪어

정해인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의 모티브가 된 실제 인물 김오랑 소령 역시 안타까운 일화가 있습니다. 김오랑 소령은 생전 12.12 군사 반란을 저지른 반역자들에게 맞섰습니다. 그는 정병주 특전사령관 비서실장으로 끝까지 그를 경호하다가 자신과 절친했던 박종규 중령이 이끄는 군인들의 총격에 맞아 사망했습니다. 이후 그는 1990년 중령으로 추서됐습니다.

김오랑 중령 사망 직후 전두환 하나회는 그를 특전사령부 뒷산에 암매장 시키는 수모를 겪게 했으나 이듬해 2월 28일 국립서울현충원 묘역으로 이장되었습니다. 김오랑 소령 순국 소식에 그의 아버지는 홧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안구 질환을 앓고 있었던 부인 백영옥 여사는 남편 사망 소식을 듣고 눈이 완전히 실명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놓였습니다.

김오랑 중령 묘비 아내 백영옥 여사
김오랑 중령 묘비 아내 백영옥 여사

 

김오랑 중령 아내 백영옥 여사 눈 실명된 후에도 남편 명예훼복 위해 싸우다 실족사

그러나 백 여사는 끝까지 김오랑 중령 명예훼복을 위해 싸웠던 인물로, 전두환을 비롯한 노태우, 최세창, 박종규 등 하나회 세력을 향해 소송을 제기하려고 했지만 알 수 없는 이유로 보류됐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1991년 6월 28일 자신이 운영하던 자비원 마당에서 실족사로 사망한 채 발견됐는데, 이 역시 의문사로 보는 시각이 대단히 많습니다.

영화 서울의 봄 김오랑 소령 연기한 배우 정해인
영화 서울의 봄 김오랑 소령 연기한 배우 정해인

 

서울의 봄 영화 속 장태완, 김오랑 알고보니 노무현 전 대통령과 남다른 인연 있었던 인물

영화 서울의 봄에서 정해인과 정우성이 연기한 오진호 소령, 이태신 장군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인 김오랑 소령(1990년 중령 추서)과 장태완 장군이 화제를 모으면서, 이들이 모두 노무현 전 대통령과 남다른 인연이 있었다는 사실이 재조명되고 있습니다.

먼저 장태완 소장은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당시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이에서 정치를 했던 인물입니다. 특히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보훈특보를 맡은 바 있지만, 후보 단일화 협의회(후단협)에 참여해 정몽준 후보 편에 섰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장태완 소장은 노무현 후보로 단일화에 성공한 후 노 후보 지지를 선언하며 이를 승복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5공 청문회 당시 모습
노무현 전 대통령 5공 청문회 당시 모습

그러나 장태완 소장은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및 심판 논란 당시 '찬성' 표를 던졌던 국회의원 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후 장태완은 2004년 총선 불출마로 정계 은퇴를 했으나 2010년 별세하기 전까지 민주당에 몸을 담고 고문직을 맡았던 인물입니다.

김오랑 중령과 노무현의 인연은 직접적이지는 않고 김 중령의 아내 백영옥 여사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백 여사는 남편이 사망한 후 고향 부산에서 불교 복지기관 자비원에서 봉사를 했습니다. 그는 1987년 6월 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뤄지자 남편 명예훼복을 위해 두발로 뛰었습니다. 1990년 12월 전두환, 노태우 등 군사반란 당시 장교들에게 손해배상 청구를 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백 여사의 배상 소송을 도왔던 인물이 노무현이었습니다. 노무현은 백 여사의 12.12 군사 반란 세력을 상대로 한 민사소송을 직접 안내하고 지원하며 백 여사를 도왔다고 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 전 대통령

그러나 소송은 이뤄지지 않았는데, 당시 언론 기사에 따르면 백 여사가 당시 노태우 정권의 외압으로 인해 소송을 진행하지 못했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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